천태산과 한국 불교의 깊은 인연

2016-09-29 07:45宋文靜安徽
中国(韩文) 2016年9期
关键词:高僧天台安徽

글|쑹원징(宋文靜, 안후이〈安徽〉대학교 외국어교육부 조교)



천태산과 한국 불교의 깊은 인연

글|쑹원징(宋文靜, 안후이〈安徽〉대학교 외국어교육부 조교)

중국 저장(浙江)성 중동부에는‘불종도원, 산수영수(佛宗道源, 山水靈秀)’로 유명한 천태산(天台山)이 있다. 이곳은 천태종의발상지로서 불교와 관련하여 매우깊은 유서를 가지고 있다. 과거 수많은 외국 승려들이 이곳을 찾아유학을 했으며 특히 한국의 승려들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천태산을자주 찾았다. 천태종은 중국 불교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로 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智顗) (AD 538~597)가 오랜 수행 끝에 창시했다. 한국의 고승들은 천태종이 창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천태산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속고승전(續高僧傳)〉 기록에 따르면수나라 초기 고구려 승려인 파야(波若)가천태산을 찾아와 지자대사에게 선법(禪法)을 구했다고 한다. 지자대사는 파야가 이미 천태종의 도리를 터득했으니 이제는 지관쌍수(止觀雙修)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조금 더 계율을 지키며 고행을 계속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지자대사는 파야에게 “천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화정(華頂)이다. 그곳에가서 도를 닦으면 반드시 크게 얻는 것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야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깊은 산속에 위치한 화정봉에서 약 16년을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수행을 하던 파야는 마침내 이치를 깨닫게 됐다. 수나라 대업(大業) 9년(AD 613) 2월,파야는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알고 정좌한채로 조용히 입적했다.

당나라 때 이르러서는 파야처럼 천태산에 유학하는 한국의 승려들이 늘어났다.신라의 승려 오공(悟空)은 승려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천태산 국청사에 신라원(新羅園)을 짓기도 했다. 이 같은 신라 승려가운데 가장 칭송받는 인물로는 도육존자(道育尊者)가 있다.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도육은 당나라 경복(景福) 원년(AD 892)에 천태산으로 유학을 왔다. 그는 무척 청빈한 생활을 했다. 항상 탁발을지니고 다니며 시주를 통해 취식했고,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소박했던 그는 늘 절을 청소하고 잡무를 도맡았다. 항상 남은 밥을 먹었으며 색과 맛이 변하였더라도 그릇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식사 때 꺼내먹곤 하였다. 겨울옷은 여기저기를 기운 베로 만든 납의(衲衣) 한장이 전부였다. 마음씨가 자비로웠던 그는 불을 땔 때도 장작에서 벌레를 발견하면 멀리 옮겨줄 정도로 생명을 몹시 아꼈다. 80세가 넘어 입적한 그를 사찰의 승려들이 산으로 메고 올라가 시신을 태우자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도육처럼 천태산에서 유학한 고승들은 매우 많다. 이들은 그곳의 승려들과깊은 정을 쌓기도 했는데, 당시 천태산의승려 법조(法照)는 ‘송선사귀신라(送禪師歸新羅)’라는 시를 지어 신라의 승려에게선물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과 한국 불교의 인연은 당나라 때부터 5대 10국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오나라 월왕 전홍숙(錢弘俶)은 불심이 깊어 일본과 한국에 사절을 파견해 천태교승(天台教承)을 구하기도 했고, 고려 광종은 중국에 체관(諦觀)을 파견해천태교전(敎典)을 주었다. 체관은천태산에서 11년을 유학하고 난뒤 승려들과 속세 사이에서 널리알려진 〈천태사교의(天台四教儀)〉를 저술했다.

체관과 동시대를 살았던 또다른 유명한 인물로 고려 왕족출신인 의통대사(義通大師)(AD 927-988)를 들 수 있다. 천태산에서 불법을 수행하다 20년 만에 깨달음을 얻은 그는 훗날 천태종의 16대조가 되었다. 그는건덕(乾德) 연간에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사명(四明) 군수 전유치(錢惟治)가 거듭 만류하며 그를 위해 절을 짓기까지 하자 결국 남기로 결정한다. 그 뒤송 태종이 이 절에 ‘보운선원(寶雲禪院)’이라는 편액을 하사한다. 의통은 현재의저장성 동쪽 지역에서 20년 간 불법을 설파했다. 그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에는 이름난 승려도 적지 않았다.

특히 고려의 고승 의천(AD 1055-1101)이 자주 꼽힌다. 고려 문종의 넷째아들로 태어난 의천은 불그 중 천태종을가장 숭상했다. 의천은 중국에 도착해 천태산의 각 사찰을 참배한 뒤 천태종의 교전을 학습했다. 고려로 돌아온 뒤에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천태종을 전했다.

이처럼 한국의 여러 고승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천태산은 중국과 한국 간 깊은 불교의 연을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약 천 년이 지난 1995년, 중국과 한국의 불교신자들은 여전히 빈번히왕래하며 천태산에 ‘중한 천태종 창시자기념당’을 세우고 양국 간 불교의 인연을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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